가족간 거래 아니었다...도곡렉슬 16억 반토막 실거래가 진실

중앙일보 조인스랜드

입력 2022.07.11 09:32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강남·용산 실거래가 반 토막

서울 강남 사교육 1번지로 꼽히는 대치동 학원가 인근에 들어선 도곡렉슬 아파트. ‘맹모’가 부러워할 교육 여건을 갖춘 3000여가구의 대단지다. 대중교통과 편의시설도 편리하다.

2003년 분양 때 260여가구 일반분양에 10만명에 가까운 1순위자가 몰려 청약경쟁률이 368대 1을 기록했다. 수도권에서 개별 단지 청약자로 역대 가장 많다.

분양가가 6억원 정도였던 84㎡(이하 전용면적) 2006년 입주했을 때 5억~6억원의 웃돈이 붙어 11억~12억원에 거래됐다.

시간이 흐르며 이후 들어선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반포자이·아크로리버파크,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 등에 밀리긴 했어도 여전히 강남 인기 주택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84㎡ 실거래가가 지난해 30억원대에 육박하더니 올해 들어 31억원대에 안착했다.

전셋값·공시가격보다 저렴

그런데 지난달 17일 계약한 실거래가 16억원이 국토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공개되면서 시장이 충격을 받았다. 불과 16일 전인 지난달 1일 실거래가(31억원)보다 15억원이나 내려간 금액이다. 올해 19억원까지 올라간 전셋값보다 싸다.

시세보다 20~30% 낮다는 공시가격 24억4400만원의 3분의 2 수준이다. 16억원이 2017년 말과 2018년 초 실거래가여서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시세가 4년 전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현재 나와 있는 매물 호가가 31억5000만~34억원이다”며 “믿기지 않는 금액으로 무슨 급한 사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상적인 거래로 볼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거래는 중개업소를 통한 중개거래가 아닌 매도인·매수인 간 직거래여서 부동산중개업소들도 계약 내용을 모르고 있었다.

강남에서도 아파트값 억대 하락 뉴스가 나오기 시작한 와중에 손꼽히는 인기 아파트의 반 토막 실거래가는 집값 하락 공포감을 키우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본지가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저가 실거래에서 더러 볼 수 있는 가족 등 특수관계인 간 거래가 아니다. 2년 전인 2020년 3월 매도인과 매수인 간 이뤄진 매매예약이 실제 매매로 이어진 것이다.

16억원은 매매예약 시점 기준의 금액인 셈이다. 그래도 당시 시세에 한참 못 미친다. 2020년 1~3월 실거래가가 23억원 정도였다.

용산서 17억원 떨어진 실거래가

용산에서 성사된 시세의 반값 수준인 거래도 매매예약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5월 21억2200만원에 계약한 용산구 한남동 형우베스트빌 228㎡다. 올해 3, 4월 이뤄진 2건 실거래가가 33억~38억5000만원이었다. 한달 새 17억여원 내려갔다.

매매예약 시기가 지난해 3월이다. 비슷한 시기에 실거래가 없었고 2020년 5~9월 실거래가 21억~24억원이었다. 역시 매매예약 시기보다 싸다고 볼 수 있다.

등기부등본에 매매예약 시기만 나오기 때문에 세부적인 계약 내용을 알 수 없다. 매매예약이 매매로 이어지는 것은 당사자 간 약속한 계약을 실행하는 것이어서 직거래 형식을 취하게 된다. 중개업소들도 알 수 없다.

박일규 법무법인 조운 대표변호사는 “매도인과 매수인 간 담보의 의미로 매매예약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업계는 도곡렉슬·형우베스트빌 모두 압류 등 채무 관계가 복잡한 것으로 미뤄 매도인이 싸게 매도하는 조건으로 매수인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은 게 아닌지 추측한다.

매매예약은 소유권이 넘어가는 정식 등기가 아니고 매수인이 소유권 이전을 요구할 수 있는 소유권이전청구권 가등기다. 말 그대로 매매를 예약한 상태여서 매도인이 다른 사람에게 팔거나 담보로 제공할 수 없다. 매수인(가등기권자)에 유리한 거래다.

자녀에게 증여 후 매매예약

부모가 자녀에게 증여한 뒤 매매예약한 경우도 있다.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수퍼펜트하우스로 불리는 79㎡와 222㎡ 두 채를 가진 A씨는 2020년 79㎡를 30대 딸에게 증여한 뒤 지난해 매매예약을 했다.

업계 관계자는 “부모가 다시 사가겠다는 뜻보다 자녀가 마음대로 처분하거나 담보로 대출받는 등 마음에 들지 않는 재산권 행사를 제약하려고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매매예약을 통한 거래가격이 시세와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매매예약 시점에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최근 몇 년 내 집값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매매예약 거래가 많지 않지만 가격이 워낙 두드러지다 보니 속사정을 모르는 시장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매매예약 거래가 일반적인 거래가 아니기 때문에 시장 동향에서 제외하는 게 옳지만 일일이 매매예약을 알기가 어렵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갑자기 급등하거나 급락한 거래는 이상 거래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시장을 읽는 신호보다 잡음이 될 수 있다”며 "사연이 많은 실거래가에 예민하게 반응해서 안된다"고 말했다.

안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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